2025년 8월 27일 수요일

【1908년 9월 23일】 야구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

1908923야구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

 
1908923, 미국 뉴욕 폴로 그라운드(Polo Grounds)에서 펼쳐진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와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의 경기는 단순한 정규 시즌 한 경기를 넘어,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고 회자되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당시 자이언츠의 신인 선수 프레드 머클(Fred Merkle, 1888-1956)이 일으킨 베이스러닝 실수, 이른바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Merkle's Boner)'는 리그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이후 머클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남았다.

프레드 머클
프레드 머클

 

1. 1908년 내셔널리그 페넌트레이스 : 숨 막히는 3파전

 
1908년 내셔널리그 페넌트레이스는 그야말로 살얼음판과 같은 긴장감 속에 진행되었다. 뉴욕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 그리고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는 시즌 내내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다. 이 세 팀은 당시 내셔널리그를 지배하던 강팀들이었고, 그들은 단 한 경기, 반 경기 차이로 선두를 오르내리며 야구 팬들을 열광시켰다 .
 
경기가 열린 923일 당시, 시카고 컵스와 뉴욕 자이언츠는 공동 1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1.5경기 차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사실상 리그 우승을 향한 분수령이었고, 모든 팬들의 시선이 뉴욕 폴로 그라운드에 집중되었다.
 
이 역사적인 경기의 주인공이 된 프레드 머클은 1908년 당시 19세로 내셔널리그 최연소 선수였다. 그는 주로 백업 1루수로 뛰었으며, 이 해에는 38경기만 출전했다. 그 해 7월에는 혈액 감염으로 발가락이 절단될 뻔한 두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고, 7월과 8월 대부분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923일 경기는 주전 1루수 프레드 테니(Fred Tenney)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서 머클에게 기회가 돌아온 첫 선발 출장이었다.
 

2. 운명의 9회말 : 끝내기 상황과 머클의 실수

 
사건은 9회말에 발생했다. 컵스와 자이언츠는 1-1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9회말 뉴욕 자이언츠는 2사 주자 1, 3루의 절호의 끝내기 찬스를 맞았다. 주자 1루에는 프레드 머클, 주자 3루에는 무스 맥코믹(Moose McCormick)이 있었다. 타석에는 자이언츠의 유격수 앨 브리드웰(Al Bridwell)이 들어섰고, 그는 중견수 앞으로 깔끔한 안타를 날렸다.
 
3루 주자 맥코믹은 홈으로 쇄도하여 경기를 끝내는 득점을 올렸다. 이때 자이언츠의 덕아웃과 팬들은 열광했고, 자이언츠 선수들은 브리드웰의 주변으로 달려가 끝내기 승리를 자축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1루 주자 프레드 머클은 맥코믹이 홈을 밟는 것을 보고 자신도 득점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는 2루를 밟지 않고 그대로 덕아웃으로 향했다.
 
당시 야구 규칙에 따르면, 주자는 모든 베이스를 순서대로 밟아야 했다. 비록 끝내기 상황에서 경기가 종료되더라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주자가 홈을 밟아야만 득점이 인정되는 규칙이 있었다. 심판들이 타자들이 베이스를 다 밟지 않는 것을 눈감아주곤 했지만, 이 상황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했다.
 

3. 컵스의 반칙성 항의와 심판의 결정

 
머클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것은 컵스의 2루수 조니 에버스(Johnny Evers)였다. 에버스는 머클이 2루를 밟지 않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즉시 컵스의 감독이자 1루수 프랭크 챈스(Frank Chance)에게 소리쳤다. 에버스는 외야로 굴러간 공을 달라고 소리친 뒤, 그 공을 잡아 2루 베이스를 밟고 심판에게 아웃을 선언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이는 2루에 강제 아웃(force out) 상황이 벌어졌으니 머클을 아웃시키고 3루 주자의 득점도 인정될 수 없다는 항의였다.
 
이 경기의 주심은 당대의 명심판으로 통하던 행크 오데이(Hank O'Day)였다. 오데이 심판은 이미 그해 9월 초,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워렌 길(Warren Gill)이라는 선수가 비슷한 베이스러닝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이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컵스의 조니 에버스가 항의했지만, 오데이 심판은 공식적인 항의가 너무 늦었다고 판단하여 아웃을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에버스가 즉시 공을 잡아 2루를 밟고 항의했기에 상황이 달랐다.
 
경기장은 자이언츠 팬들의 끝내기 승리 환호와 컵스 선수들의 거센 항의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격렬한 논쟁 끝에 오데이 심판은 고심 끝에 "머클 아웃(Merkle is out)"을 선언했다. 이로써 자이언츠의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고, 9회말은 3아웃으로 마무리되었다. 경기는 1-1 동점 상태가 되었으나,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오데이 심판은 경기를 무승부로 선언했다.
 

4. 재경기 결정과 논란의 확산

 
경기가 무승부로 처리되자, 양 팀은 물론 리그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다. 내셔널리그 회장이자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권위자였던 벤 존슨(Ban Johnson)은 이 논란의 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경기는 무승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재경기(replay)'를 치러야 한다."
 
이 결정은 뉴욕 자이언츠에 치명타였다. 그들은 정당하게 끝내기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했고, 무승부 처리도 아닌 재경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리그 회장의 권한은 막강했고, 결국 양 팀은 시즌 종료 후 108, 리그 우승팀을 가리는 타이브레이커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재경기에서 시카고 컵스는 4-2로 승리하며 내셔널리그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 승리로 컵스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단 한 경기 차이로 제치고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
 

5. '본헤드'의 멍에와 머클의 삶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는 단순히 한 경기의 실수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레드 머클은 '본헤드(Bonehead)'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평생 동안 안고 살아야 했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는 1908924일자 기사에서 자이언츠의 패배를 "선수 머클의 비난받을 만한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로도 10년 넘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뉴욕 자이언츠, 브루클린 다저스, 시카고 컵스 등에서 주전급 선수로 뛰었다. 그는 다섯 번이나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시리즈에서 패배 팀 소속이었다. 이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머클은 선수 생활이 끝난 1926년 이후에는 야구계와 거리를 두며 지냈다.
 
세월이 흘러 1950, 그는 드디어 자이언츠 올드 타이머 경기(old-timers' game)에 참석했는데, 이때 팬들로부터 뜨거운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이는 그가 평생 짊어져야 했던 '본헤드'라는 멍에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프레드 머클은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
 

6. 역사적 교훈과 유사 사례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는 야구 규칙의 중요성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사건은 야구 규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되었으며, 이후 베이스러닝 규칙에 대한 명확성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현대 야구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201371일에는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랜싱 러그너츠(Lansing Lugnuts)의 한 선수가 끝내기 안타를 치고도 2루를 밟지 않고 덕아웃으로 가 아웃 처리되어 경기가 무효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그너츠는 연장전 끝에 패배했는데, 이는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와 매우 유사한 사례로 회자되었다.
 
결론적으로 1908923일의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는 단순히 한 선수의 실수를 넘어, 스포츠 드라마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과 팀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야구 역사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아있다. 이 논란의 사건은 야구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며, 그 해 시카고 컵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그 비극적인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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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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