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내셔널리그(NL) 시즌 : 확장과 제도화의 해
1879년은 내셔널리그가 창립 이후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해로, 리그는 팀 수를 다시 8개로 확대하고 경기 일정과 규칙을 정비하며 프로야구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글에서는 팀 구성 변화, 경기 운영, 규칙 개정, 주요 선수 기록, 시즌 성과, 역사적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1. 팀 구성 확대와 일정 정비
1879년 내셔널리그는 전년도까지 6개 팀 체제를 유지하다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신규 4개 팀을 영입하였다. 기존의 인디애나폴리스 블루스와 밀워키 그레이스가 리그에서 탈퇴하고, 대신 클리블랜드 블루스, 버팔로 바이슨즈, 시러큐스 스타스, 트로이 트로잔스가 새로 합류하였다. 이로써 내셔널리그는 8개 팀 체제로 복귀하였으며, 각 팀은 상대 팀과 총 84경기씩을 치르는 일정으로 운영되었다.
경기 일정은 5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진행되었고, 리그가 직접 균등한 경기 일정을 관리함으로써 팬들은 보다 예측 가능한 시즌을 즐길 수 있었다.
2. 시즌 성과 및 승패 순위
1879년 시즌은 프로비던스 그레이스가 59승 25패, 승률 .702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과 함께 페넌트 우승을 차지하였다.
시즌 종료 후 버팔로, 시러큐스, 트로이 팀은 리그에서 탈퇴하였으며, 이후 내셔널리그는 보다 안정적인 8팀 체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3. 제도 정비와 규칙 변화
- 1879년 시즌에는 볼넷을 얻기 위한 볼 판정 기준이 여전히 9개로 유지되었으나, 규정 문구가 변경되면서 단순히 9개의 볼이 선언되면 타자가 1루로 출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3개의 볼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1볼이 ‘불공정 투구(unfair pitches)’ 3개로 계산되는 방식이었다.
- 투수가 타자를 고의로 맞혔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명백한 사고가 아닌 한 최소 10달러에서 최대 50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는 2024년 기준으로 약 337달러에서 1,687달러에 해당하며,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 이닝의 선두 타자는 이전 이닝의 마지막 타자 다음 순번의 타자가 되도록 규칙이 변경되었다. 이전까지는 주자가 루상에서 아웃될 경우, 그 주자 뒤에 예정된 타자가 다음 이닝의 첫 타자가 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 투수 박스의 크기도 조정되었다. 기존의 6피트 × 6피트 정사각형에서 앞줄을 2피트 앞으로 이동시켜, 4피트 × 6피트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변경되었다.
- 이 해에는 선수 보류 조항(Reserve Clause)이 사상 처음으로 공식 선수 계약서에 포함되었다. 이 조항은 구단이 특정 선수를 지속적으로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이후 선수 계약 제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 또한, 투수는 반드시 타자를 마주 보고 선 다음에야 투구할 수 있도록 규정이 강화되었다.
4. 주요 기록 및 선수 활약
1) 타격 부문 주요 리더
- 1879년 내셔널리그 타율 부문에서는 프로비던스의 폴 하인스가 .357의 타율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 OPS(출루율+장타율) 부문에서는 보스턴 레드캡스의 짐 오루크가 .877로 리그 최고의 공격 효율을 보여주었다.
- 홈런 부문에서는 찰리 존스가 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단독 선두에 올랐다.
- 타점 부문에서는 찰리 존스와 짐 오루크가 나란히 62타점을 기록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 득점 부문에서도 찰리 존스가 85득점으로 리그 최다 득점자로 활약했다.
- 안타 부문에서는 폴 하인스가 146안타를 기록하며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 투수 부문 주요 리더
- 투수 부문에서는 프로비던스의 존 몽고메리 워드가 47승을 거두며 다승 1위를 차지했다.
- 트로이의 조지 브래들리와 클리블랜드의 짐 맥코믹은 나란히 40패씩을 기록하며 최다 패전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 평균자책점(ERA) 부문에서는 보스턴의 토미 본드가 1.96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 탈삼진 부문에서도 존 워드는 239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리그 선두에 올랐다.
- 투구 이닝 부문에서는 신시내티의 윌 화이트가 무려 680이닝을 소화하며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 세이브 부문에서는 프로비던스 소속의 바비 매튜스와 존 워드가 각각 1개의 세이브를 기록해 공동 1위에 올랐다.
-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에서는 토미 본드가 1.021로 가장 효율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다.
5. 리그 운영과 외부 요인
1879년 시즌 동안 내셔널리그는 경기 입장료를 50센트로 유지하면서도 관중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프로비던스는 15센트의 불펜 좌석을 도입해 저렴한 가격에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였다.
한편, 일부 팀들은 시즌 종료 후 서부 투어를 진행하며 캘리포니아까지 원정 경기를 치르기도 했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비용 문제로 인해 수익성이 낮아 중단되기도 했다.
당시 내셔널리그는 국제어소시에이션(IA)과의 경쟁 속에서 팀 수 확대와 보류 조항 도입 등을 통해 리그의 권위와 안정성을 강화하였다. 이를 통해 선수 유출을 방지하고, 조직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6. 역사적 의미와 평가
1879년 시즌은 내셔널리그가 8개 팀 체제와 84경기 일정을 본격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근대 메이저리그의 형태를 확립한 해로 평가된다. 특히 보류 조항의 도입과 팀 확장은 선수 권리를 제한하는 구조였으나, 동시에 리그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프로비던스 그레이스의 페넌트 우승과 함께 폴 하인스, 짐 오루크, 존 워드, 토미 본드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기록은 당시 야구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성과는 이후 MLB의 통계 기반 문화 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시즌은 내셔널리그가 단순한 스포츠 리그를 넘어서 공정한 계약과 규칙 정비,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현대 스포츠 산업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기도 하다.
1879년 내셔널리그 시즌은 팀 구성의 확장, 제도 정비, 선수 기록 등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 시즌이었다. 팬들은 균형 잡힌 경기 일정과 뛰어난 경기력을 즐길 수 있었고, 리그는 구단과 선수 간의 관계를 더욱 체계화하며 프로야구의 제도적 틀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이후 아메리칸리그 창설, 월드시리즈 도입, 그리고 현재 메이저리그로 이어지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879년은 단순한 기록의 해가 아니라, 본격적인 프로야구 산업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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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 글은 Wikipedia의 ‘1879 Major League Baseball season’과 ‘1879 in baseball’ 문서를 비롯하여, Baseball Almanac, Walksaber 블로그, SABR, heroesofbaseball.com 등 다양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