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월드 시리즈 : 컵스의 108년 저주가 시작된 마지막 영광
1908년 10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그 해의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대장정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월드 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의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와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가 다시 한번 맞붙었다. 이는 전년도인 1907년 월드 시리즈의 리매치였으며, 당시까지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성사된 리매치였다. 결과적으로 시카고 컵스가 5차전에서 타이거스를 꺾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 우승은 컵스가 2016년까지 무려 108년간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맛보지 못하게 되는 기나긴 암흑기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 왕조의 시대, 시카고 컵스 :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다
1900년대 초반, 시카고 컵스는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던 진정한 강팀이었다. 특히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컵스는 다섯 시즌 동안 무려 네 번이나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세 번의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1907년과 1908년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06년에는 한 시즌 최다승(116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컵스의 강력함 뒤에는 명장 프랭크 챈스(Frank Chance, 1877-1924) 감독이자 1루수(선수 겸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팅커 투 에버스 투 챈스(Tinker to Evers to Chance)’로 불리는 철벽의 키스톤 콤비, 유격수 조 팅커(Joe Tinker, 1880-1948)와 2루수 조니 에버스(Johnny Evers, 1881-1947), 그리고 투수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 1876-1948) 등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인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컵스는 당대 최고의 투수진과 철벽 수비를 자랑하며, 그야말로 무적의 팀으로 불렸다.
1908년 월드 시리즈에 앞서 컵스는 내셔널리그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와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와 치열한 3파전을 벌였다. 특히 시즌 막판에 터진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Merkle's Boner)' 사건은 컵스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9월 23일 뉴욕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뉴욕의 루키 프레드 머클(Fred Merkle, 1888-1956)이 끝내기 안타 후 1루 주자로서 2루에 가지 않고 덕아웃으로 들어가 아웃 처리되며 경기가 무효가 되고, 컵스가 동률로 재경기를 치러 승리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한 사건이다. 이 논란의 여지 있는 승리를 통해 컵스는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었다.
2. 복수의 칼날을 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휴이 제닝스(Hughie Jennings, 1869-1951) 감독의 지휘 아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이들의 전력은 강력한 타선을 기반으로 했으며, 특히 젊은 천재 타자 타이 콥(Ty Cobb, 1886-1961)이 팀의 핵이었다. 콥은 전년도 1907년 월드 시리즈에서 컵스의 투수진에 막혀 부진했지만, 1908년에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컵스를 상대로 설욕을 다짐하고 있었다. 타이거스 타선에는 콥 외에도 샘 크로포드(Sam Crawford, 1880-1968)와 같은 강타자들이 포진해 있어 언제든 빅이닝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년도 월드 시리즈에서 컵스에 패배했던 타이거스는 이번 리매치를 통해 반드시 복수에 성공하고 팀 역사상 첫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아메리칸리그에서 클리블랜드 냅스(Cleveland Naps)와 0.5경기 차,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와 1경기 차의 살얼음판 승부 끝에 우승을 거머쥐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3. 시리즈의 이모저모 : 예측 불가능했던 전개
1908년 월드 시리즈는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총 5경기 만에 승부가 갈렸다. 경기는 디트로이트의 베넷 파크(Bennett Park)와 시카고의 웨스트 사이드 그라운즈(West Side Grounds)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4명의 심판이 2인 1조로 교대로 경기를 진행한 첫 월드 시리즈였다. 잭 셰리든(Jack Sheridan), 행크 오데이(Hank O'Day), 빌 클렘(Bill Klem), 토미 코놀리(Tommy Connolly) 등 당대의 명심판들이 총출동했다 .
월드 시리즈는 양 리그의 극적인 페넌트레이스 경쟁과는 달리, 다소 김이 빠지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시리즈의 마지막 두 경기는 무득점 경기로 끝났다. 컵스와 타이거스 모두 홈에서 관중들의 보이콧을 겪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티켓 판매를 둘러싼 잡음과 스캔들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가장 적은 관중을 기록했는데, 마지막 경기의 관중 수는 6,210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4. 컵스의 압도적 승리 : 4승 1패로 챔피언 등극
1차전 (10월 10일, 디트로이트 베넷 파크) : 컵스 10-6 승
- 승리투수 :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 시카고, 1승)
- 패전투수 : 에드 서머스(Ed Summers, 디트로이트, 1패)
- 1907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타이 콥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렸지만, 시카고 컵스가 3회에 대거 4점을 뽑아 역전했다. 타이거스는 8회 클로드 로스먼의 2타점 적시타로 6–5로 다시 앞섰으나, 컵스가 9회초에 5점을 몰아치며 10–6으로 재역전했고, 모르데카이 브라운이 9회말을 막아내며 컵스가 1차전 승리를 거뒀다.
2차전 (10월 11일,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그라운즈) : 컵스 6-1 승.
- 승리투수 : 오발 오버럴(Orval Overall, 시카고, 1승)
- 패전투수 : 와일드 빌 도너번(Wild Bill Donovan, 디트로이트, 1패)
- 1907년 월드시리즈 2차전은 8회까지 0–0으로 진행되다가, 조 틴커의 2점 홈런을 시작으로 시카고 컵스가 6점을 올리며 승기를 잡았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9회 타이 콥의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했지만, 컵스는 오발 오버롤의 90분 완투로 6–1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 2승째를 올렸다.
3차전 (10월 12일,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그라운즈) : 타이거스 8-3 승.
- 승리투수 : 조지 멀린(George Mullin, 디트로이트, 1승)
- 패전투수 : 잭 피스터(Jack Pfiester, 시카고, 1패)
- 타이 콥이 5타수 3안타 2도루로 월드시리즈 개인 최고 활약을 펼친 이 경기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6회에 타이 콥과 동료들의 연속 적시타로 경기를 뒤집고, 8회 추가 득점으로 시카고 컵스를 8–3으로 꺾었다. 이는 타이거스가 1907~1908년 컵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였다.
4차전 (10월 13일, 디트로이트 베넷 파크) : 컵스 3-0 승.
- 승리투수 :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 시카고, 2승)
- 패전투수 : 에드 서머스(Ed Summers, 디트로이트, 2패)
- 컵스가 3회 적시타로 득점한 뒤 모데카이 브라운이 4안타 무볼넷 완투로 호투했고, 9회에도 추가 득점하며 1시간 35분 만에 경기를 끝냈다.
5차전 (10월 14일, 디트로이트 베넷 파크) : 컵스 2-0 승.
- 승리투수 : 오발 오버롤(Orval Overall, 시카고, 2승)
- 패전투수 : 와일드 빌 도노반(Wild Bill Donovan, 디트로이트, 2패)
- 오발 오버롤은 월드시리즈 역사상 유일한 4탈삼진 이닝을 기록하며 10삼진 무실점 투구로 승리했고, 컵스는 1회와 5회에 점수를 내며 승리했다. 양 팀 모두 실책 없이 경기했으며, 이 경기는 월드시리즈 최저 관중(6,210명)과 최단 시간 경기(1시간 25분) 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시카고 컵스는 4승 1패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꺾고 1908년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이는 컵스의 2년 연속 우승이자,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이었다. 또한, 컵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5. 108년의 저주 : 컵스의 마지막 우승
1908년의 우승은 시카고 컵스에게 영광의 절정이었지만, 동시에 길고 긴 무관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우승 이후 컵스는 2016년까지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기나긴 우승 가뭄에 시달렸다. 이 긴 세월은 훗날 1945년부터 시작된 '염소의 저주'와 엮이며 더욱 비극적인 서사를 갖게 되었다. 컵스는 이 우승 이후 1910년, 1918년, 1929년, 1932년, 1935년, 1938년, 1945년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모두 패배하며 팬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무려 108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컵스는 2016년에 마침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지긋지긋했던 무관의 사슬을 끊고 '염소의 저주'를 깨뜨렸다. 이로써 1908년 월드 시리즈는 컵스의 마지막 우승이라는 점에서 야구 역사상 가장 길었던 우승 가뭄의 시작점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당시 야구 팬들은 1908년 컵스의 우승이 이렇게 오랫동안 마지막 영광으로 남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야구의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와 역사의 무게를 담고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