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Japan: Ultimate Japan] UFC 15.5, 전설의 서막을 알린 이종격투기 글로벌 확장
1997년 12월 2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UFC Japan: 얼티밋 재팬’(UFC Ultimate Japan 또는 UFC 15.5)은 UFC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대회로 기록된다. 이 대회는 UFC 역사상 미국이나 그 영토 외의 국가에서 열린 첫 이벤트였다는 점에서 이종격투기 스포츠의 글로벌 확장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일본에서 유료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되었고, 미국에서는 페이퍼뷰(Pay Per View)로 송출되며 전 세계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참고로 ‘UFC 8: 다윗과 골리앗(David vs. Goliath)’은 1996년 2월 16일에 푸에르토리코 바야몬의 루벤 로드리게스 콜로세움에서 이미 개최된 바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령(territory)이 아닌 미연방 자유연합주(Commonwealth)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미국 본토는 아니지만 미국의 영토로 간주되고 있다.
1. 세 명의 챔피언이 탄생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 명의 챔피언이 탄생하였다.
1) 헤비급 챔피언십(Heavyweight Championship) : 랜디 커투어가 챔피언 모리스 스미스를 판정으로 꺾고 새로운 UF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2) 헤비급 토너먼트(Heavyweight Tournament) : 사쿠라바 카즈시가 마르커스 실베이라를 암바(팔굴리기)로 제압하며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하였다.
[헤비급 일반경기]
[헤비급 대체경기]
[헤비급 준결승]
- 카즈시 사쿠라바 (Kazushi Sakuraba) vs. 마커스 실베이라 (Marcus Silveira)
심판의 조기 중단으로 무효 처리됨 - 탱크 애벗(Tank Abbott) vs. 안조 요지 (Yoji Anjo)
탱크 애벗이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었으나 손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이후 경기를 기권하였다.
[헤비급 결승전]
- 앞선 무효 경기(no-contest)와 탱크 애벗(Tank Abbott)의 토너먼트 기권으로 인해, UFC 관계자들은 사쿠라바와 실베이라(Silveira) 간의 재경기를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으로 결정했다.
3)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십(UFC Light Heavyweight Championship) : 프랭크 샴락이 케빈 잭슨을 22초 만에 암바로 제압하며 챔피언에 등극하였다.
2. 사쿠라바의 전설적인 서막 : 논란 속에서 피어난 ‘천재’의 이야기
UFC Japan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본 이종격투기의 아이콘, 사쿠라바 카즈시의 토너먼트 여정이었다. 당시 일본 격투기 단체였던 킹덤 프로레슬링(Kingdom Pro Wrestling)의 홍보를 위해 카네하라 히로미츠(Hiromitsu Kanehara)와 안조 요지(Yoji Anjo)가 얼티밋 재팬 토너먼트에 참가하기로 계약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네하라가 훈련 중 부상을 입으면서 사쿠라바가 급작스럽게 대체 선수로 투입되었다.
이 토너먼트는 헤비급을 위한 것이었고, 당시 사쿠라바는 183파운드(약 83kg)로, UFC 헤비급 기준인 200파운드(약 90.7kg)에 크게 미달하는 체격이었다. 출전을 위해 그는 자신의 체중을 203파운드(약 92kg)로 보고했고, 첫 상대는 243파운드(약 110kg)에 달하는 브라질리언 주짓수 블랙벨트이자 전 익스트림 파이팅 챔피언인 마르커스 실베이라(Marcus Silveira)였다.
초유의 오심과 판정 번복 : 사쿠라바와 실베이라의 첫 경기는 UFC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기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실베이라의 맹렬한 공격이 이어진 후, 사쿠라바는 낮게 태클을 시도했다. 그러나 심판 존 매카시(John McCarthy)는 사쿠라바가 KO 되었다고 오인하여 경기를 너무 일찍 중단시켰다. 예상치 못한 종료에 관중들의 거센 항의가 쏟아졌고, 분노한 사쿠라바는 마이크를 잡고 일본 관중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경기 후 매카시 심판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자신의 오심을 인정하고 판정을 무효(No Contest)로 번복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은 당시 UFC의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UFC가 스포츠로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승에서의 재대결과 명언 : 한편, 토너먼트 결승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던 탱크 애벗(Tank Abbott)이 안조 요지를 꺾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기권했다. 이에 UFC 관계자들은 사쿠라바와 실베이라의 경기를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으로 재대결하게 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같은 날 밤 다시 옥타곤에 오른 사쿠라바는 이번에는 마르커스 실베이라에게 암바(Armbar) 서브미션을 성공시키며 완벽하게 승리했다. 이는 ‘프로레슬링은 강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사쿠라바가 남긴 “사실, 프로레슬링은 강하다”(In fact, professional wrestling is strong)라는 명언은 오늘날까지도 이종격투기 역사에 남아있는 상징적인 말로 평가된다.
3. 명승부전 다시 보기
[헤비급 챔피언십] 랜디 커투어 vs. 모리스 스미스(챔피언)
[헤비급 토너먼트 준결승전] : 탱크 애벗 vs. 안조 요지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 사쿠라바 카즈시 vs. 마르커스 실베이라
4 대회의 백과사전 선정 수상작
2011년 출간된 UFC 백과사전(UFC Encyclopedia)에서는 ‘UFC Japan: 얼티밋 재팬’ 대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회고적인(retrospective) 상을 수여했다.
-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Fight of the Night) : 사쿠라바 카즈시(Kazushi Sakuraba) vs 마르커스 실베이라(Marcus Silveira)의 재대결. 이 경기는 승부의 역사적 중요성과 내용적 재미를 인정받았다.
- 서브미션 오브 더 나이트(Submission of the Night) : 프랭크 샴락(Frank Shamrock)이 케빈 잭슨 (Kevin Jackson)을 꺾은 경기. 샴락은 이 경기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서브미션을 성공시켰다.
5. UFC Japan이 남긴 유산 : 글로벌 확장과 전설의 탄생
‘[UFC Japan: 얼티밋 재팬’은 단순한 이종격투기 대회를 넘어 여러모로 UFC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 대회는 UFC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화의 첫걸음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일본은 이종격투기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던 시장이었고, UFC는 이 대회를 통해 새로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사쿠라바 카즈시의 등장은 이종격투기 판도를 뒤흔든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기술과 경기 운영, 그리고 캐릭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격투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레이시 헌터’라는 별명처럼 그레이시 가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이종격투기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의 활약은 종합격투기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UFC Japan은 당시 정치적 규제로 인해 ‘암흑기’를 겪고 있던 UFC가 역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대회를 통해 발굴된 새로운 스타들은 훗날 UFC가 세계적인 스포츠 단체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으며, 이종격투기가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