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9: Motor City Madness] ‘노 홀즈 바드(No Holds Barred)’를 잃어버린 격동의 대회
1996년 5월 17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코보 아레나에서 개최된 UFC 9는 ‘모터 시티 매드니스(Motor City Madness)’라는 부제처럼 혼란과 격변의 중심에 있었다.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UFC는 이 대회를 기점으로 예상치 못한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의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이종격투기 스포츠는 규제의 칼날 아래 놓이게 되었고, 이는 UFC 9의 경기 규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이 대회는 UFC 초기 역사상 가장 저조한 관람률을 기록했으며, 수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 정치적 압력과 규정 변화 : ‘노 홀즈 바드’의 상실
UFC 9이 열리기 불과 며칠 전, 미시간주의 규제 당국은 대회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UFC의 상징과도 같았던 ‘노 홀즈 바드(No Holds Barred)’ 규정을 포기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사실상 이종격투기를 격투 스포츠에서 제외시키려는 시도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엄격한 규칙들이 강제적으로 도입되었다.
- 닫힌 주먹(Closed-Fist Strikes) 사용 금지 : 선수들은 주먹을 쥐고 상대를 가격할 수 없었으며, 오직 열린 손바닥으로만 공격할 수 있었다. 이는 공격의 효율성을 극도로 떨어뜨렸다.
- 헤드벗(Headbutts) 금지 : 초기 UFC의 주요 기술 중 하나였던 박치기 공격이 금지되었다.
- 다운된 상대에 대한 공격 금지 : 그라운드 상태의 상대에게는 어떠한 타격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현대 MMA의 ‘그라운드 앤 파운드’와는 정반대되는 규칙이었다.
- 케이지 잡기 금지 : 케이지를 잡고 자신의 포지션을 유지하거나 방어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이러한 규제는 경기의 흐름을 극단적으로 방해했고, 선수들이 가진 기술의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켰다. 룰을 변경하지 않으면 아예 대회를 개최할 수 없었기에 UFC는 어쩔 수 없이 규정을 따랐지만, 이는 대회의 재미와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2. 최악의 슈퍼파이트 : 켄 섐록 vs 댄 세번 리매치
UFC 9의 메인 이벤트는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십 매치로, ‘인간 무기’ 켄 섐록(Ken Shamrock)과 ‘괴물 레슬러’ 댄 세번(Dan Severn)의 리매치였다. 이들은 UFC 6에서 맞붙은 적이 있으며, 당시 켄 섐록은 서브미션으로 세번에게 승리했었다. 이번 경기는 그 설욕전의 성격이 짙었다.
경기는 18분간 진행되었고, 필요 시 3분 연장 두 번으로 총 24분까지 싸울 수 있었다. 이 경기는 두 전설적인 파이터의 대결로 기대를 모았으나, 강화된 규칙으로 인해 비참할 정도로 재미없는 경기가 되었다. 선수들은 규제된 상황에서 효과적인 공격을 펼치기 어려웠고,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를 붙잡고 케이지 주변을 맴돌거나 소극적인 자세로 대치했다. 주먹을 쥐고 공격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 켄 섐록은 상대를 잡고 계속해서 ‘펀치’를 시도했으나, 이는 모두 열린 손바닥 공격으로 유도되어 팬들을 실망시켰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관중들은 극심한 야유를 쏟아냈다.
결국 이 경기는 댄 세번이 스플릿 판정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무의미한 경기로 평가받으며, 이 경기는 UFC 역사상 최악의 슈퍼파이트 중 하나로 오명을 남겼다 .
3. 그 외 경기들 : 흥미로운 매치업과 규제의 한계
토너먼트 대신 개별 경기로 진행된 UFC 9의 다른 경기들도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마크 슐츠(Mark Schultz) vs 게리 굿리지(Gary Goodridge) : 가장 눈길을 끈 경기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레슬러 마크 슐츠의 UFC 데뷔전이었다. 그는 게리 굿리지와 맞붙어 타격으로 얼굴에 출혈을 낸 후 주심의 경기 중단으로 승리했다. 이는 슐츠의 유일한 UFC 경기였다.
돈 프라이(Don Frye) vs 아마우리 비테티(Amaury Bitetti) : UFC 8 토너먼트 우승자인 돈 프라이는 아마우리 비테티를 TKO로 제압하며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대회는 총 7번의 판정승과 3번의 TKO/KO, 그리고 1번의 서브미션 승으로 끝났다. 많은 경기가 새로운 규정의 제약 속에서 소극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4. UFC 9의 유산 : 고난 속에서 발전의 씨앗을 뿌리다
UFC 9은 이종격투기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였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필두로 한 격투기 반대 운동은 이 대회를 기점으로 더욱 격렬해졌고, 이종격투기는 미국 내 여러 주에서 금지되거나 규제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UFC 9에서 강제로 도입된 비상식적인 규칙들은 ‘이종격투기는 너무 위험하다’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종격투기가 스포츠로서의 정당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의 실패는 UFC로 하여금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을 마련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훗날 이종격투기가 통일된 규칙(Unified Rules of Mixed Martial Arts)을 만들고, 주류 스포츠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UFC 9은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회였지만, UFC의 도전과 변화, 그리고 스포츠로서 성장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이 격동의 시기를 거쳐 지금의 MMA가 탄생할 수 있었음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