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7] The Brawl in Buffalo(버팔로에서의 난투극)
뉴욕에서 펼쳐진 격투기의 전설
1995년 9월 8일, 미국 뉴욕주 버팔로의 메모리얼 오디토리엄에서 UFC 7이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The Brawl in Buffalo”(버팔로에서의 난투극)라는 부제로 열렸으며,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이하 UFC)의 일곱 번째 종합격투기 이벤트였다. 생방송으로 유료 시청(PPV)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되었고, 이후에는 홈 비디오로도 출시되었다. 이 대회는 단순한 격투기 이벤트를 넘어 UFC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였다.
1. 토너먼트와 슈퍼파이트의 공존
UFC 7은 두 개의 주요 축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UFC 전통의 8인 토너먼트이며, 다른 하나는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십(Superfight Championship)이다. 슈퍼파이트는 당시 공식 UFC 챔피언인 켄 섐록(Ken Shamrock)과 UFC 6의 토너먼트 우승자인 올렉 타크타로프(Oleg Taktarov) 간의 대결로 치러졌다. 이 경기는 UFC 역사상 챔피언과 도전자의 구도가 명확히 설정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편, 토너먼트에는 여덟 명의 파이터가 출전했으며, 추가로 세 개의 대체 경기(Alternate bouts)가 진행되었다. 대체 경기는 PPV 생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주요 경기의 결원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예비 경기로 기능했다.
2. 경기 규칙과 시간 제한
UFC 7은 초창기 UFC의 규칙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체급과 체중 제한은 존재하지 않았고, 라운드 역시 없었다. 경기는 서브미션, KO, 타월 투척, 심판 중단 등에 의해 종료되어야 했으며, 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 제한은 적용되었다. 토너먼트의 8강전과 4강전에는 20분의 시간 제한이, 결승전과 슈퍼파이트에는 30분의 시간 제한과 최대 5분의 연장전(overtime)이 설정되었다.
하지만 실제 경기 운영에서는 시간 제한이 일관되게 지켜지지 않았다. 슈퍼파이트의 경우 원래 5분의 연장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3분만 진행되었다. 이는 생방송 시간 제약 때문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전체 방송 시간이 PPV 계약 시간인 3시간을 초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일부 시청자는 대회의 마지막 경기 장면을 시청하지 못한 채 방송이 종료되는 불편을 겪었다.
3. 경기 결과
4. 대회 운영 및 진행자
UFC 7의 메인 경기 주심은 ‘빅’ 존 맥카시(Big John McCarthy)가 맡았다. 그는 초창기 UFC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로, 공정하고 엄격한 심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이날의 링 아나운서로는 유명 방송인 마이클 버퍼(Michael Buffer)가 참여하여 대회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는 특유의 “Let’s get ready to rumble!”로 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한편, 마이클 버퍼는 방송 중 버팔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엄을 NFL 팀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의 홈구장이라고 잘못 언급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실제로 이 경기장은 NHL 팀인 버팔로 세이버스(Buffalo Sabres)의 홈 구장이었다.
예선 경기의 심판으로는 배우이자 무술가인 타이맥(Taimak)이 참여했다. 그는 UFC 6에 이어 UFC 7에서도 예선 경기를 담당하며 대회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5. 마르코 후아스의 토너먼트 우승
UFC 7의 토너먼트 우승자는 브라질 출신의 마르코 후아스(Marco Ruas)였다. 그는 결승전에서 폴 바렐런스(Paul Varelans)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후아스는 무에타이와 그라운드 기술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파이터로,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종합적인 격투 기술을 활용한 전략적 운영으로 주목받았다.
폴 바렐런스는 큰 체격과 파워를 앞세운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후아스의 기술과 경기 운영에 밀려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후아스의 승리는 단순한 한 경기의 승리가 아니라, UFC에서 다양한 무술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6. 뉴욕주와 UFC의 갈등
UFC 7은 뉴욕주에서 개최된 최초의 UFC 대회였지만, 동시에 마지막이기도 했다. 대회 이후 뉴욕주에서는 종합격투기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UFC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격투 단체도 뉴욕주에서 대회를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정치적, 사회적 논란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으로, MMA가 비도덕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인식이 법적 규제의 근거가 되었다.
그 결과 UFC는 무려 21년 동안 뉴욕주에서 단 한 번의 대회도 열 수 없었다. 이 금지 조치는 많은 격투기 팬들과 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걸친 로비와 입법 운동이 이어졌다. 마침내 2016년, UFC는 UFC 205를 통해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식 복귀를 이루었고, 2017년에는 UFC 210을 통해 버팔로에도 다시 돌아왔다.
7. UFC 7의 역사적 의미
UFC 7은 다양한 면에서 의미 있는 대회였다. 켄 섐록과 올렉 타크타로프의 슈퍼파이트는 당시 UFC 최고의 파이터들이 격돌한 상징적인 경기였으며, 마르코 후아스의 토너먼트 우승은 종합 격투기의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비록 경기 운영 측면에서는 시간 제한 문제와 방송 사고 등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격투기의 다양성과 전략성, 그리고 제도적 논의까지 촉발시킨 상징적인 대회로 남아 있다.
뉴욕주에서 종합격투기가 금지되는 계기가 되었던 UFC 7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MMA가 하나의 주류 스포츠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발판이 되었다. 마르코 후아스의 전략적 승리, 켄 셰름록의 위용, 그리고 올렉 타크타로프의 도전은 모두 이 대회를 전설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지금도 많은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 UFC 7은 초창기 UFC의 순수함과 혼란, 그리고 가능성이 공존했던 상징적인 이벤트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