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12: Judgement Day] 새로운 시대를 연 ‘심판의 날’
1997년 2월 7일, 미국 앨라배마주 도선에 위치한 도선 시민 센터에서 ‘UFC 12: 저지먼트 데이’(UFC 12: Judgement Day)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단순한 격투 이벤트가 아니었다. 험난했던 UFC 초창기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현대 이종격투기(MMA)의 기반을 다진, 말 그대로 ‘심판의 날’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들을 품고 있었다. UFC 12는 오늘날 MMA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체급의 도입, 초대 UFC 헤비급 챔피언 탄생, 그리고 두 명의 전설적인 인물의 데뷔를 알리며 UFC의 역사를 영원히 바꾼 대회로 기억된다. 약 3,100명의 관중이 현장을 찾았고, 122,000건의 유료 시청(Pay-Per-View) 구매를 기록하며 전작들보다 낮은 판매량을 보였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1. 체급의 시대 개막 : 이종격투기의 새로운 정의
UFC 12는 UFC 역사상 최초로 체급을 도입한 대회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그전까지 UFC는 ‘무규칙’ 또는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기치 아래 체중이나 신장의 제한 없이 모든 선수들이 한 데 섞여 싸웠다. 이는 이종격투기 초창기 ‘어떤 무술이 가장 강한가’를 증명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지나친 체격 차이로 인한 안전 문제와 예측 불가능한 경기 양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이 대회를 통해 UFC는 헤비급(200파운드 이상)과 라이트급(200파운드 미만)이라는 두 개의 체급을 신설하고, 각 체급별로 별도의 미니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비록 제공된 위키피디아 정보에는 라이트급 토너먼트의 세부 결과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헤비급 토너먼트의 결과는 명확하다. 이러한 체급 도입은 이종격투기가 단순히 난투극이 아닌, 선수들의 기량이 공정하게 겨루어지는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는 이후 MMA가 대중에게 더욱 인정받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 경기 결과
1) 라이트급 토너먼트
2) 헤비급 토너먼트
3) 헤비급 챔피언십
2. 최초의 UFC 헤비급 챔피언 탄생 : 세번 vs 콜먼 슈퍼파이트
UFC 12는 초대 UFC 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한 역사적인 대회였다. 이 타이틀은 당시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 댄 세번(Dan Severn)과 UFC 토너먼트 챔피언 마크 콜먼(Mark Coleman) 간의 ‘슈퍼파이트’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었다. 원래 세번의 상대는 돈 프라이(Don Frye)로, 프라이는 ‘얼티밋 얼티밋 1996’에서 세번과의 리매치를 따냈으나 부상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었다. 결국 돈 프라이 대신 마크 콜먼이 세번의 상대로 나서게 되었고, 이 경기는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십’과 ‘UFC 토너먼트 챔피언십’을 통합하여 첫 UFC 헤비급 챔피언을 결정하는 대결이 되었다.
UFC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경기는 ‘회고적으로’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Fight of the Night)와 서브미션 오브 더 나이트(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결국 마크 콜먼이 댄 세번을 상대로 서브미션 승리를 거두며 초대 UF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콜먼은 압도적인 레슬링과 파운딩 기술로 당시 이종격투기에서 최강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의 승리는 UFC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3.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 : 비토 벨포트와 조 로건의 데뷔
UFC 12는 두 명의 전설적인 인물이 UFC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대회로도 기억된다.
비토 벨포트(Vitor Belfort)의 화려한 데뷔 : 19세의 나이에 UFC 무대에 처음 등장한 비토 벨포트는 이 대회에서 헤비급 토너먼트를 우승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회고적으로’ 녹아웃 오브 더 나이트(Knockout of the Night)에 선정된 그의 스콧 페로조(Scott Ferrozzo) 전 승리는 벨포트의 폭발적인 타격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이후 ‘더 페노메논’(The Phenom)이라는 별명처럼 UFC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활약하며 여러 체급에서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조 로건(Joe Rogan)의 첫걸음 : 현재 UFC 해설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로도 유명한 조 로건 역시 UFC 12에서 처음으로 UFC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백스테이지 인터뷰를 담당하며 경기 승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조 로건은 훗날 UFC의 상징적인 목소리가 되어 전 세계 수많은 격투기 팬들에게 이 스포츠를 해설하고 이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4. 정치적 압력 속에서 길을 찾다 : 끊이지 않는 개최 난항
UFC 12는 대회를 개최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의 거센 비판과 압력으로 인해, UFC는 여러 페이퍼뷰 송출사에서 퇴출당하고 대회를 열 장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본래 UFC 12는 뉴욕 나이아가라 폴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주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되었다. 다음 개최지로 고려되었던 오리건주 역시 대회를 금지시켰다. 결국 UFC는 이전에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앨라배마주로 발길을 돌려, 버밍엄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마일 떨어진 작은 도시 도선의 도선 시민 센터에서 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이처럼 장소 변경이 잦았던 것은 이종격투기가 주류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규제의 영향으로 UFC는 2001년 뉴저지 주 체육위원회의 승인을 받기 전까지 주로 미국 남부 주(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등)와 일본, 브라질에서만 이벤트를 개최해야 했다. UFC 12는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 UFC가 끈질기게 생존하며 발전을 모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5. UFC 12의 유산 : 현대 MMA의 초석을 다지다
‘UFC 12: 저지먼트 데이’는 단순한 과거의 이벤트가 아니다. 이 대회는 체급 시스템이라는 현대 MMA의 핵심 구조를 확립하고, 초대 헤비급 챔피언을 탄생시키며 MMA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비토 벨포트와 조 로건이라는 훗날의 전설들이 처음으로 등장한 무대이기도 했다. 동시에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UFC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대회는 UFC가 ‘무규칙 싸움’에서 ‘진정한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한 중대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규제 많았던 시기를 거쳐 지금의 UFC가 세계적인 스포츠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되새기게 하는, 진정한 ‘심판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