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월드 시리즈 : 전설의 시작, 크리스티 매튜슨의 불멸의 3완봉승
1. 서론 : 메이저리그 역사의 새 장을 열다
1905년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의 대미를 장식한 1905년 월드 시리즈(1905 World Series)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전년도인 1904년,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 존 맥그로(John McGraw, 1873~1934)가 아메리칸 리그 팀과의 대결을 거부하여 월드 시리즈가 취소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1905년에는 월드 시리즈가 정식으로 부활하며 양대 리그의 챔피언이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이 해의 월드 시리즈는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 NL) 챔피언 뉴욕 자이언츠와 아메리칸 리그(American League, AL) 챔피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Philadelphia Athletics) 간에 7전 4선승제 형식으로 펼쳐졌다. 특히 이 시리즈는 미래의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 마운드에서 펼친 명승부가 돋보였고, 뉴욕 자이언츠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1905년 월드 시리즈는 1903년의 첫 만남 이후 두 번째로 열린 월드 시리즈였으며, 1904년의 공백을 넘어 두 리그와 전미 야구 위원회(National Baseball Commission)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된 최초의 월드 시리즈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이 경기는 이후 월드 시리즈가 메이저리그의 연례 행사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2. 월드 시리즈의 부활 : 1904년의 그림자를 걷어내다
1904년 월드 시리즈가 취소된 것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비난은 쏟아졌고, 야구계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내셔널 리그 챔피언 뉴욕 자이언츠의 존 맥그로 감독은 당시 아메리칸 리그를 마이너 리그로 간주하며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보스턴 아메리칸스(Boston Americans)와의 경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두 메이저리그 간의 긴장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월드 시리즈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 자이언츠의 구단주 존 T. 브러시(John T. Brush, 1870~1912)는 오프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를 매년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강제하는 규칙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규칙은 1905년 2월 중순에 양대 리그에서 모두 채택되었고, 이는 이후 월드 시리즈가 매년 정식으로 개최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1905년 월드 시리즈는 단순한 우승팀을 가리는 경기를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제도적 이정표가 되었다. 팬들과 야구계의 지속적인 요구는 이 위대한 대결이 야구 역사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게 했다.
3. 출전팀 분석 : 강호들의 대결
1905년 월드 시리즈는 각 리그의 최고 팀인 뉴욕 자이언츠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간의 불꽃 튀는 대결이었다.
내셔널 리그 챔피언 :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
- 감독 : 존 맥그로(John McGraw, 1873~1934)
- 시즌 성적 : 105승 48패, 승률 0.686으로 내셔널 리그 우승.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내셔널 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내셔널 리그 최강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 주요 선수(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1880~1925) : 당대 최고의 투수로 꼽혔으며, 이 시리즈에서도 압도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 로저 브레스나한(Roger Bresnahan, 1879~1944) : 포수이자 유능한 타자였다.
- 조 맥기니티(Joe McGinnity, 1871~1929) : 또 다른 강력한 투수로 팀의 마운드를 이끌었다.
- 팀 컬러 : 맥그로 감독의 공격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 아래, 견고한 수비와 효율적인 공격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Philadelphia Athletics)
- 감독 : 코니 맥(Connie Mack, 1862~1956)
- 시즌 성적 : 92승 56패, 승률 0.622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 아메리칸 리그의 신흥 강호로서 그들의 강력함을 증명했다.
- 주요 선수(명예의 전당 헌액자):
- 치프 벤더(Chief Bender, 1883~1954) : 강력한 선발 투수로, 뛰어난 변화구를 구사했다.
- 에디 플랭크(Eddie Plank, 1875~1926) : 좌완 투수로 꾸준함과 안정적인 제구력을 자랑했다.
- 루브 워델(Rube Waddell, 1876~1914) : 애슬레틱스의 최고 투수였으나, 시리즈에 불참했다는 안타까운 스토리가 있다.
- 팀 컬러 : 코니 맥 감독의 조용하고 치밀한 전략 아래, 투수진의 깊이가 강점인 팀이었다.
두 팀 모두 명감독과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기에, 팬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기대했다.
4. 숨겨진 이야기 : 워델의 부재와 화이트 엘리펀트의 등장
1905년 월드 시리즈에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했다.
루브 워델(Rube Waddell)의 미스터리한 불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시리즈 시작 전부터 큰 약점을 안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최고 투수였던 루브 워델(Rube Waddell, 1876~1914)이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불참 이유는 동료 선수 앤디 코클리(Andy Coakley)와의 '레슬링 시합' 중 어깨 부상을 입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각에서는 워델이 시리즈에 뛰지 않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거나 '돈을 받고' 부상을 가장했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애슬레틱스의 코니 맥 감독은 이러한 소문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지만, 워델의 부재는 애슬레틱스에게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 설화
존 맥그로 감독은 한때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 즉 쓸모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비유했다. 하지만 애슬레틱스 구단은 이 비하를 오히려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고, 팀 마스코트로서 당당히 사용했다. 시리즈 1차전 시작 전 홈 플레이트에서 라베 크로스(Lave Cross) 애슬레틱스 주장(캡틴)은 맥그로에게 포장된 선물을 건넸는데, 그 안에는 장난감 흰 코끼리가 들어 있었다. 맥그로는 크게 웃으며 받았지만, 결국 이 시리즈의 최후의 승자는 맥그로와 자이언츠였다. 이 일화는 당시 리그 간의 치열한 신경전과 야구계의 재치 넘치는 유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5. 경기 흐름 : 셧아웃의 연속과 매튜슨의 독무대
1905년 월드 시리즈는 7전 4선승제로 진행되었으며, 모든 경기가 셧아웃(shutout)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특징을 가졌다. 이는 당시 '죽은 공 시대'의 투수 중심 야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1) 1차전 (10월 9일, 필라델피아) : 뉴욕 자이언츠 승
- 선발 투수 :
뉴욕 자이언츠 -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에디 플랭크(Eddie Plank) - 경기 내용 : 양 팀의 에이스 투수들이 명예의 전당급 투수전을 펼쳤지만, 자이언츠가 플랭크를 상대로 3득점하며 매튜슨이 완봉승을 거두었다.
- 최종 스코어 : 뉴욕 자이언츠 3-0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승패 : 자이언츠 승 (승리투수 : 매튜슨) / 애슬레틱스 패 (패전투수 : 플랭크)
2) 2차전 (10월 10일, 뉴욕)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승
- 선발 투수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에디 플랭크(Eddie Plank)
뉴욕 자이언츠 - 조 맥기니티(Joe McGinnity) - 경기 내용 : 전날 패배한 플랭크가 절치부심하며 자이언츠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애슬레틱스 타선은 맥기니티를 상대로 3점을 뽑아내며 팀에 귀중한 첫 승을 안겼다.
- 최종 스코어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3-0 뉴욕 자이언츠
- 승패 : 애슬레틱스 승 (승리투수 : 플랭크) / 자이언츠 패 (패전투수 : 맥기니티)
3) 3차전 (10월 12일, 필라델피아) : 뉴욕 자이언츠 승
- 선발 투수 :
뉴욕 자이언츠 -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치프 벤더(Chief Bender) - 경기 내용 : 단 하루의 휴식 후 매튜슨이 다시 등판하여 벤더와 격돌했다. 매튜슨은 다시 한번 애슬레틱스 타선을 압도하며 셧아웃을 기록했고, 자이언츠 타선은 벤더에게 9점을 뽑아내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를 통해 매튜슨의 체력과 구위가 전대미문임을 입증했다.
- 최종 스코어 : 뉴욕 자이언츠 9-0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승패 : 자이언츠 승 (승리투수 : 매튜슨) / 애슬레틱스 패 (패전투수 : 벤더)
4) 4차전 (10월 13일, 뉴욕) : 뉴욕 자이언츠 승
- 선발 투수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에디 플랭크(Eddie Plank)
뉴욕 자이언츠 - 조 맥기니티(Joe McGinnity) - 경기 내용 : 양 팀의 2선발 투수들이 다시 맞붙었다. 팽팽한 투수전 속에서 자이언츠가 단 1점을 뽑아내며 승리했다. 플랭크는 완투했지만, 득점 지원을 받지 못했다.
- 최종 스코어 : 뉴욕 자이언츠 1-0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승패 : 자이언츠 승 (승리투수 : 맥기니티) / 애슬레틱스 패 (패전투수 : 플랭크)
5) 5차전 (10월 14일, 뉴욕) : 뉴욕 자이언츠 승
- 선발 투수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치프 벤더(Chief Bender)
뉴욕 자이언츠 -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 경기 내용 : 불과 6일 동안 3번째 등판에 나선 매튜슨이 피로한 기색 없이 다시 한번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그는 애슬레틱스 타선을 또다시 셧아웃시키며 자신의 세 번째 완봉승이자 자이언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었다. 벤더 또한 2실점 완투하며 분전했지만, 매튜슨의 벽은 너무 높았다.
- 최종 스코어 : 뉴욕 자이언츠 2-0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승패 : 자이언츠 승 (승리투수 : 매튜슨), 애슬레틱스 패 (패전투수 : 벤더)
총 결과 : 뉴욕 자이언츠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4승 1패를 기록하며 1905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6. 최고의 별들 : 마운드의 영웅들
1905년 월드 시리즈는 투수들의 지배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시리즈였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 매튜슨의 활약은 전설적이다.
-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 1880~1925) :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매튜슨은 이 시리즈에서 3차례의 선발 등판을 통해 3경기 모두 완봉승을 거두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27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0.00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그의 뛰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구질은 애슬레틱스 타선을 압도했고, 그는 명실상부한 이 시리즈의 MVP였다. 그의 활약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가치를 스스로 입증했다.
- 에디 플랭크(Eddie Plank, 1875~1926) : 애슬레틱스의 또 다른 명예의 전당 투수였다. 2차전에 등판하여 완봉승을 거두며 팀에 유일한 승리를 안겼다. 그의 안정적인 제구력과 좌완 특유의 구위는 자이언츠 타선에도 위협적이었다.
- 치프 벤더(Chief Bender, 1883~1954)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선발 투수로, 1차전과 3차전, 5차전에 등판했다. 비록 1차전과 3차전에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그 역시 완투하며 매튜슨과 명승부를 펼쳤다. 특히 5차전에서는 2점만 내주는 역투를 펼쳤으나, 매튜슨의 위세에 눌렸다. 그 또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 조 맥기니티(Joe McGinnity, 1871~1929) : 자이언츠의 또 다른 명예의 전당 투수로, 2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4차전에서는 1점 셧아웃을 기록하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그 역시 견고한 투구로 팀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켰다.
이 외에도 훌륭한 타자와 수비수들이 양 팀에 포진해 있었지만, 1905년 월드 시리즈는 투수들의 헌정 무대였다. 특히 매튜슨의 압도적인 피칭은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되었다.
7. 역사적 의미와 유산 : 월드 시리즈의 초석
1905년 월드 시리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 월드 시리즈의 공식화 : 1904년의 취소 사태 이후, 1905년 월드 시리즈는 두 리그와 전미 야구 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받아 진행되었다. 이는 월드 시리즈가 단순한 친선 경기가 아니라, 야구 시즌의 진정한 대미를 장식하는 필수적인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부터 월드 시리즈는 매년 정식으로 개최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야구 영웅의 탄생 : 크리스티 매튜슨의 압도적인 3완봉승은 그를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전설적인 투수로 각인시켰다. 그의 활약은 오늘날에도 투수들의 위대한 피칭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 리그 간 경쟁 구도의 확립 : 1905년 월드 시리즈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간의 자존심 대결이자, 통합 메이저리그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무대였다. 이 대결을 통해 두 리그는 라이벌 관계 속에서도 상호 발전을 모색하는 구조를 확립할 수 있었다.
- '죽은 공 시대'의 특징 : 모든 경기가 셧아웃으로 끝난 이 시리즈는 득점이 적고 홈런이 귀했던 '죽은 공 시대(Dead-ball era)'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현대 야구와 비교하며 당시 야구의 전술적,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재정적 성공 : 월드 시리즈는 상당한 수익을 창출했으며, 경기 티켓 판매와 선수들의 상금 분배 등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 이는 프로 야구의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1905년 월드 시리즈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메이저리그 야구가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이다. 야구 팬들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명승부이자, 야구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을 장식한 의미 있는 시리즈로 남아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